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블라디미르 1세 (문단 편집) === 내치 === [[988년]]에 수많은 아들들에게 루스 곳곳을 분할하여 분봉했다. 이후 키예프 루스가 산산조각나면서 갈라지는 공국들의 많은 수가 이때 처음 모습을 드러냈다. 기독교 개종 후 아마 990년대 초반에, 블라디미르 1세는 [[보야르]][* 키예프 루스의 공작, 백작과 같은 봉건 귀족.]들과 포사드니크[* 키예프 루스의 [[시장(공무원)|시장]] 직.]들을 모아서 평의회를 열었다. 여기서 10진법에 기반한 새로운 행정 및 군사 체계를 조직했고, 《교회 헌장》을 제정해 교회의 권한도 정했다. 법도 다듬었는데, 고대 슬라브인의 관습법인 '비라'를 명문화한 후 [[동로마 제국]]의 로마법을 대대적으로 도입했다. 그 후 로마법을 기반으로 비라 법을 섞어[* 비라법의 핵심은 살인을 사형이 아닌 벌금으로 다스리는 것이었다. 블라디미르 1세는 로마법에서 사형과 눈 뽑기, 거세 등 고문 종류를 들어낸 뒤 그 자리에 비라법의 벌금제도를 집어넣었다.] 키예프 루스 국법을 완성했다. 따라서 키예프 루스도 이제부터 로마법을 따르는 국가가 되었다. 경제적으로는 무역을 크게 진흥시켰으며, 원래 동로마의 솔리두스화나 이슬람의 디르함화를 받아 쓰던 키예프 루스에서 최초로 화폐를 발행했다. 금화와 은화 두 종류를 발행했으며 금화는 '즐라트크', 은화는 '스레브레니크'로 불렀다. 동로마 제국의 화폐와 거의 비슷한 디자인이었으나 그리스식 복식을 입은 블라디미르 1세의 모습과 블라디미르 1세의 이름을 넣어 발행했다. 아쉽게도 당대의 국제 화폐였던 솔리두스와 디르함에 밀려 블라디미르 1세 사후엔 추가로 발행되지 못하고 금세 사라졌다. 기독교의 도입과 함께 블라디미르 1세는 문맹 퇴치 정책을 추진했다. 사람들이 [[성경]] 정도는 읽을 줄 알아야 신앙 생활을 하기 좋았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아토스 산]] 출신의 불가리아인 수도자들을 불러들여 귀족 아이들을 교육하게 했다. 이 정책의 결과는 블라디미르 1세 사후부터 러시아 문학이 꽃피는 것으로 드러난다. 또 다른 기독교와 관련된 정책은 복지 정책이었다. 블라디미르 1세는 자선 활동을 통해 기초적인 복지를 실현했다. 매주 일요일마다 대공 자신의 돈으로 축제를 베풀었고, 빈민들에게도 빵, 고기, 야채, 꿀, 술 등을 수레에 실어 나누어 주었다고 한다. 성당을 세우면서 조모 [[키예프의 올가]]가 시작한 석조 건물 건축을 계속 진행한 것은 덤으로 화려한 성당을 위시로 한 여러 석조 건물이 루스 곳곳에 세워졌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